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그랜트 힐 (문단 편집) === 데뷔와 함께 전성기 === [[파일:external/images.complex.com/idb1q3rgofx15ttkdacp.jpg|width=500]] ~~그분의 표정이 신경쓰인다면 기분탓이다.~~ 1994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3순위로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에 지명됐다. 이때 당시 디트로이트는 배드 보이즈의 해체 이후로 내리막을 타고 있었다. 힐은 팬들의 성원과 당시 배드 보이즈의 주축 멤버 중 유일하게 남아었던 [[조 듀마스]]의 지지와 뒷받침 덕분에 단숨에 팀의 리더로 올라섰다. 당시 인기가 엄청나게 높아서 94-95시즌에 열린 올스타전 팬투표에서 [[샤킬 오닐]]을 밀어내고 1위를 기록해서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올스타전 본 게임에 참가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이때 당시가 [[마이클 조던]]의 은퇴 직후인데다가 아직 복귀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앤퍼니 하더웨이]]와 함께 [[전미 농구 협회|NBA]]의 차세대 아이콘으로 주목을 받았다. 94-95시즌 힐은 신인으로서 경기당 평균 19.9득점 6.4리바운드 5.0어시스트 1.8스틸이라는 훌륭한 활약으로 [[제이슨 키드]]와 함께 올해의 신인상을 공동으로 수상했다. 팀으로서는 데이브 빙이후 오랜만에 나온 신인상 수상자이기도 했다. 95-96시즌에는 조던의 복귀 후 첫 풀 시즌이었음에도 힐의 인기는 높았다. 조던을 제치고 또 한번 올스타전 팬투표 1위를 하는 등 그야말로 전성기를 달렸다.[* 조던은 초월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인물답게 87~93시즌, 97~98시즌까지 총 9번 올스타 투표 1위를 차지했다. 86시즌을 부상으로 거의 못 뛰었고, 94, 95시즌은 은퇴한 상태니(95시즌 막판에 복귀했지만 이미 올스타전이 끝난 상태) 제대로 뛰고도 올스타투표1위를 놓친건 루키시즌과 96시즌뿐이다. 다시 말해 전성기의 조던을 인기로 누른 건 힐이 유일하다. 참고로 조던 다음으로 올스타 투표 1위를 많이 차지한 건 2020년 기준으로 [[르브론 제임스]], 총 7회이고, 그 다음은 [[줄리어스 어빙]]과 [[빈스 카터]]로 각각 4회씩.] 이 당시 그랜트 힐의 인기가 어느정도였느냐면 NBA는 항상 경기전 원정팀과 홈팀의 스타팅5를 장내아나운서가 소개하는데, 보통 원정팀 선수를 소개할 때는 홈 관중들의 가벼운 야유가 쏟아지는 게 일상이지만, 오직 그랜트 힐만은 정말 큰 환호를 받았다. 여태껏 원정팀 선수면서 홈팀 선수 못지않게 큰 환호를 받는 선수는 이 당시 그랜트 힐이 거의 전무후무한 사례다.[* 조던은 경기 중 환호를 받는다. 그 예로 [[게리 페이튼]]이 루키시절 이였던 90년 11월 17일 시애틀 홈 경기를 보면 시카고 홈으로 착각될 만큼 조던 플레이에 많은 환호를 보낸다.] 이 시즌 80경기에 출전해 평균 20.2득점 '''9.8리바운드''' 6.9어시스트의 성적을 올렸으며 팀도 간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오프시즌에는 드림팀3의 일원이 되어서 [[1996 애틀란타 올림픽]]에 참가해 금메달을 따기도 했다. 마이클 조던 이후 리그를 대표하는 후계자를 찾는데 혈안이 되었던 NBA로서는 이런 힐의 활약에 반색했으며, 실제로 [[앤퍼니 하더웨이]]와 함께 '포스트 조던'의 선두주자로 꼽혔다.[* 조던의 예상치 못한 1차 은퇴 이후 한참 글로벌 시장 개척을 하고 있었던 NBA 입장에서는 정말 호들갑스럽다 싶을정도로 포스트 조던을 물색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래서 이 당시는 정말 조금만 싹수가 보이는 선수가 있어도 언론에서 포스트 조던 후보군에 넣고 설레발을 치곤 했는데, 가장 많이 이름이 언급된 선수가 본 항목의 그랜트 힐, 앤퍼니 하더웨이, 그리고 90년대 후반부터 NBA에 입성한 [[코비 브라이언트]]와 [[빈스 카터]] 등이 있다. 그 외 나름 유명했던 선수가 95-96시즌 필라델피아에 입단한 제리 스택하우스인데, 조던과 똑같은 6피트6인치 신장,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출신, 드래프트 3순위 등의 요소가 있어 스택하우스가 시즌 초반 반짝하며 신인왕 후보 1순위로 꼽히자 언론에선 진짜 조던의 후계자가 나타났다는 식으로 장난 아니게 설레발을 쳤다. 심지어 해롤드 마이너같이 덩크만 잘했던 선수조차도 당시 포스트 조던 후보군에 있었으니 그 심각성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알 수 있다.] [[파일:external/www.nba.com/grant_hill_pistons_dribble.jpg|width=400]] 96-97시즌부터는 [[조 듀마스]]의 충고를 받아들여 더욱 전투적으로 플레이했고, 팀 동료들을 독려하며 리더십을 보이는 등 완전한 팀의 리더로 올라섰다. 이 시즌 피스톤즈는 새로 바뀐 팀 로고와 유니폼과 더불어 제 2의 창단을 선언해 팀 분위기가 고무된 상태였다. 거기에 신임 감독 덕 콜린스의 전술, 마지막 불꽃을 태운 듀마스의 활약, 건재했던 오티스 도프와 테리 밀즈, 린지 헌터, 그리고 그 시즌 새로 영입된 이적생 그랜트 롱과 스테이시 오그먼 등의 활약으로 시즌 초반부터 리그 선두권으로 치고 나갔으며, 오랫동안 72승 불스에 이어 동부지구 2위를 유지했다. 이 시즌 힐은 80경기에 출전해 무려 '''평균 21.4득점 9리바운드 7.3어시스트'''로 세 카테고리에서 모두 팀내 1위를 기록했다. 시즌 평균 20득점이상 9리바운드 이상 7어시스트 이상을 해낸 것은 [[래리 버드]] 이후 처음이다. 이 시점까지 비교 대상으로 자주 거론되는 [[스카티 피펜]][* 힐과 피펜은 세대가 다른 선수다. 피펜은 87년에 데뷔했고 힐은 94년도니까 대략 8시즌이 차이가 난다. 물론 96/97시즌만 보면 힐의 활약이 더 좋았지만 피펜도 2nd팀에 이름을 올렸다.]을 능가했다는 평을 받았으며 All NBA 퍼스트팀에 이름을 올렸다. IBM에서 선정한 시즌 최고의 플레이어에 선정되기도 했다.[* 참고로 역대 IBM Award 수상자 중 리그 MVP 수상 경력이 없는 선수는 그랜트 힐이 유일하다.] 이와 더불어 기록을 보면 알겠지만 이 시즌까지 트리플더블을 밥 먹듯 했었다. 팀도 54승 28패의 성적으로 다시 예전처럼 전성기를 맞는 것처럼 보였으나... 승승장구할 것 같았던 피스톤즈는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애틀랜타 호크스]]에 일격을 당해 2승 3패로 탈락하고 말았다. 이후 주축 멤버들의 구성 자체는 그렇게 큰 변화가 없었음에도 공교롭게도 완전히 약체인건 아니지만 전형적인 중위권과 하위권을 허덕이는 중간그룹의 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힐 또한 그동안 많은 짐을 짊어진데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개인 기록에서 소폭 하락세를 보였다. 조 듀마스, 릭 마혼 등 배드 보이즈 멤버들이 모두 떠나고 맞게 된 99-00시즌. 그제껏 활약에 비해 득점력이 좀 아쉽다는 평을 받아온 힐은 이 시즌 본격적으로 득점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하고 정말 그렇게 했다. 그제껏 거의 시도하지 않았던 3점슛까지 펑펑 꽂아넣으며 시즌 평균 25.8득점을 기록. [[샤킬 오닐]]과 [[앨런 아이버슨]]에 이어 그 시즌 득점랭킹 3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시즌 막판 발목부상을 당했고 한 번도 플레이오프 1라운드를 통과해보지 못한 미련 때문인지 부상 치료 대신 플레이오프 출전을 강행했다. [[파일:external/nbcprobasketballtalk.files.wordpress.com/72377998.jpg|width=500]] 하지만 몸이 정상이 아니었던 힐은 플레이오프 첫 두 경기동안 고작 평균 11득점에 그치는 저조한 활약 끝에 시즌 아웃 판정을 받았고, 팀의 스윕패를 지켜봐야만 했다. 제대로 뛸 수 없어 코트 바닥에 엎드린 채로 자책하는 모습이 많은 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리고 이 안타까운 모습이 피스톤즈에서의 마지막이었다. 피스톤즈 시절을 총평하자면 그랜트 힐 개인은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그것이 피스톤즈의 성공으로 이어지진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일부 피스톤즈 팬들은 그의 플레이가 배드 보이즈와 비교해 너무 '신사적'[* 그랜트 힐을 대표하는 별명이 '코트의 신사'. 실제로 명문대 출신 부모 밑에서 정규 교육을 잘 받아 흑인문화와는 거리가 있었던 힐을 싫어하는 흑인도 적지 않았다. 이럴 때 쓰는 속어가 버락 오바마도 가끔 듣는 오레오.]이라며 싫어하기도 했었다.[[http://emodelhouse.co.kr/|1]] 그리고 그 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